17.10.18


수업이 좀 일찍 끝나서 동기들과 함께 코인 노래방에 갔다.

나는 노래를 심각하게 못하는 편이라 노래방을 좋아하진 않지만, 함께 간 두 친구가 워낙 노래를 잘하는 친구들인지라 가만히 앉아서 노래 감상하러 가는 셈치고 따라갔다.


좁디 좁은 방 안에 세명이 딱 모여앉아 노래를 부르고 듣는게 불편하지 않을까 했는데, 막상 가보니 오히려 노래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노래 가사를 정성들여 읽으면서 혼자 흥얼거리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친구들 목소리로 듣기도 하고. 기대한 것보다 훨씬 낭만적인 경험이었다.


애들이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다 기억해놨다가 플레이리스트로 만들려고 했는데 기억 나는 게 몇 개 없어서 아쉽다. 다음에 또 같이 노래방에 가면 꼭 다 기록해놔야지.


17.10.06


여윳돈이 좀 생겨 새 카메라를 샀다. 원래 계획은 롤라이 35를 사는 것이었지만 콘탁스로 뽑은 사진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좋았던 데다가 롤라이 35의 목측식 초점 방법은 익숙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떨어졌다. 그 뒤로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야시카 일렉트로 35. 소위 말하는 가난한 자의 라이카다.


광주에 내려간 뒤로 중고나라를 계속 뒤져봤는데 딱히 마음에 드는 것도 없었고 일단 매물 자체가 너무 적었다. 서울 가는대로 남대문 시장이라도 뒤져봐야하나 했는데, 검색을 좀 해보니 광주 안에도 카메라 파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하고 평이 좋은 곳은 롯데 백화점 건너편의 카메라 수리실. 주인 할아버지가 너무 친절하시다고 해서 더 마음이 동했다. 어제 미리 전화를 드려 야시카 블랙을 사고 싶다고 말씀 드렸는데, 블랙은 없고 실버만 남아있다고 하시더라. 가격은 6만원. 중고나라 가격의 반값이다!


오늘 출발 전에 다시 한 번 전화를 드리고 찾아갔다. 한 칸짜리 작은 방에서 영업을 하셨는데, 친구분도 와계시고 먼저 온 손님들도 있었다. (알고보니 그 손님들도 야시카를 맡겨놨다고. 신기한 우연이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자마자 말없이 야시카를 쓱 내미셨다. "블랙은 안 돼. 도금이 아니고 페인트 칠한 거라 다 벗겨져요." 하고 덧붙이시면서.


할아버지는 카메라를 무척 좋아하시는 분 같았다. FM과 비슷한 듯 다른 점이 많아 필름실 여는 법과 노출계 보는 법을 여쭤봤는데, 귀찮아하는 내색 없이 친절히 가르쳐주셨다. 노출계에 불이 안 들어와도 셔터 스피드를 auto로 맞춰놓았으니 어지간하면 조리개에 맞춰서 적정 노출로 찍힌다고 알려주셨다. 대신 배터리 확인 버튼만 꼭 누르라는 말도 잊지 않으셨고.


주인 할아버지는 앞서 온 손님들에게 야시카 사용법을 알려주느라 정신 없으신 와중에도, 짐을 챙겨 나가는 나에게 "사진 잘 찍어요!" 하고 인사 해주셨다. 물건의 첫인상이라는 건 대개 물건을 살 때 받았던 인상에서 그대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야시카를 볼 때마다 주인 할아버지가 떠올라 마음이 따뜻해지겠지. 할아버지가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17.10.01


자소서


이 세 글자만 써놨는데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서류 마감이 벌써 2주 앞, 면접은 3주도 채 안 남았다. 한동안은 자소서를 써야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죽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걸 어떻게 써야하나 막막하기까지 했다. 사회학과 소속 학회의 회장 경력이나 노어노문학과 부전공 같은 것들은 화학과 전혀 접점이 없었다. 하지만 이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 역시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자꾸 고민이 됐다. 이도저도 못한 채 시간만 흘렀다. 그동안 나는 요란하고 특별한 것 같았던 내 대학 생활을 뒤돌아보게 됐다. 이렇게 내세울게 없었나, 하고 씁쓸해하면서.


그런데 막상 집에 오니 이유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뭐 어때 이정도면 괜찮지, 하는 생각으로 자소서 파일을 열어 이것저것 메모를 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넘쳐났다. 내일은 꼭 자소서 1안을 완성시켜야지. 부디 면접 때까지 이 자신감이 쭉 이어졌으면 좋겠다. 


17.09.24


어제는 하루종일 화학부 체육대회에 참여했다. 집에 돌아와 근육운동을 마저 한 뒤 씻고 깊은 잠을 잤다. 눈을 떴을 땐 이미 오후 한 시 반. 오늘 가야 했던 무기화학 보강은 끝나고도 남은 시간이었다.


당분간은 오늘같이 여유로운 날을 찾기 어렵겠다 싶어, 전에 스캔한 필름도 찾고 새 필름도 맡길 겸 사진관에 가기로 했다. 지하철을 세 번이나 환승해서 가기가 귀찮아 삼성역에서 내려 버스를 탔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반대편에 있는 코엑스가 눈에 들어왔다. 피아노 소리에 맞춰 치솟던 분수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스무살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여기에 데려와야지, 하고 다짐하면서 누군가를 생각했던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그 때 그 사람들과는 이제 연락도 잘 하지 않는다. 그들을 좋아하고 아꼈던 내 마음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생각하니 씁쓸해졌다.


서울에 산 지 벌써 햇수로만 육 년이 됐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땐 이곳은 영원히 타지일 것 같았고 나는 민들레 씨앗처럼 어디에도 뿌리 내리지 못 한 채 겉돌 것 같았는데,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때 문득문득 떠오르는 추억들이 많은 것을 보니 나도 모르는 새에 조금씩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진을 맡기고 나와 잠실로 갔다. 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익숙한 풍경들. 삼 년 전에 이 곳에서 과외를 했다. 과외를 갈 때마다 잠실의 대로변을 따라 걸으며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할머니 나야, 하면 할머니가 곧바로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할머니는 이미 그 때도 치매를 앓고 계셨기 때문에 기억하시는게 많지 않았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 드려도 내가 대학에 갔다든가 하는 것들은 전화를 끊기도 전에 잊어버리셨지만, 그래도 전화를 걸 때마다 늘 내 이름만큼은 잊지 않고 불러주셨다. 다른 손자 손녀들과 사랑하던 딸들을 다 잊어도 나만큼은 절대 잊지 않으셨던 건 아마 그 통화들 덕분이겠지. 할머니의 목소리로 내 이름을 듣고 싶다. 그 목소리를 들으면 나는 또 울게 되겠지.


울적해진 마음을 달래려 커피와 케이크를 먹었다. 만 원이 넘는 사치였다. 창가 가까운 자리에 앉아 케익을 먹는 동안 마음 속에서 자꾸 두려움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시간이 지나 독립한 뒤에도 내 기호를 지키며 살 수 있을까, 내가 돈을 벌 수나 있을까, 하는 것들. 내 취미나 음식에 대한 취향 같은 것들은 사실상 부모님의 경제력을 기반으로 갖게 된 것이다. 독립한 뒤 가난해져 결국 취향을 잃게 될지도 모르고, 심하면 독립 자체를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한이 들었다. 나는 이럴 때마다 사는 것이 무섭다. 하루는 죽는 게 무서워 울고, 또 하루는 사는 게 무서워 우울해하는 스스로가 우습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이렇게 무섭고 슬픈 와중에도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된다. 확실히 40대까진 취향을 잃고 되는 대로 살 지 몰라도 결국엔 잘 살게 될 거라고 위로해준 인생 선배, 우리 엄마의 이야기. 그리고 늘 우울하고 부정적인 생각 뿐인 내 옆에서 나를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 않고 묵묵히 곁을 빌려주는 짝꿍의 존재. 여기에 내가 그동안 한껏 불안해하고 걱정했지만 번듯한 결과물이 된 사진들. 이 모든 것들이 더해지자 슬픈 마음이 조금은 사라졌다. 


아련하고 슬프고 두려웠지만, 그래도 결국 행복하게 마무리 된 어느 일요일.


17.09.18


진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실험은 실험대로 바쁘고 교봉 때 애들하고 한 약속도 지켜야 하니 이것저것 공부도 해야하는데, 대학원 자소서 쓴다고 발표고 뭐고 다 얼른 해치워버리려고 몰아놨더니 숨이 막히려고 한다. 밤은 진짜 새고 싶지 않았는데 당장 화요일에 고딕문학 발표해야해서 밤을 새야할 듯...엉엉


그렇게 좋아하는 출사도 못 가고 다 찍은 필름이 세 롤(이지만 제대로 찍은 것은 한 롤 뿐)이나 되는데도 현상 스캔을 못 맡길 정도다. 평소 같으면 삶의 질이 떨어진다고 한껏 풀죽어 있었겠지만 지금은 풀 죽을 시간조차 없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 내일은 애들 수행평가도 봐줘야 하고 언어교환하는 친구도 만나러 가야하네.

이렇게 정신 없는 거 대학교 1학년 때 이후로 처음인 듯 싶다.


정신 놓고 다니지 말자. 정신 바짝!


17.09.11


처음 카메라를 사겠다고 했을 때 아빠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진 찍는 취미를 들이면 돈을 많이 쓰게 된다. 처음엔 카메라로 시작하지만 끝에는 차를 사게 되어 결국 종말이 좋지 못하게 된다."


그 때까지만 해도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을 썩 귀담아듣지 않았기 때문에(물론 지금도 안 듣는다) 크게 신경쓰지 않고 M3를 중고로 샀었다. 그게 작년의 일이다. 그리고 열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새로운 미러리스와 필름 카메라 두 대를 가지고도 새 필카를 사고 싶어 중고 카메라 사이트를 배회하는 폐인이 되었다. 


처음 미러리스를 살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사진을 좋아하진 않았는데, 어째 필카를 손에 잡은 이후로 완전히 덕후가 돼버렸다. 그래서 요즘엔 다른 일을 하다가 사진이 너무 좋아서 사진작가가 됐다거나 아예 현상소를 차렸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남 얘기 같지가 않다. 





요즘 나는 작고 귀여운 롤라이에 꽂혀서 끙끙 앓고 있다. 이렇게 작고 귀여운데 결과물까지 완벽한 카메라라니! 나같은 세미 대학원생에게 꼭 필요한 카메라다. 대학원 입시만 끝나봐라 반드시 지르고 말테다.


17.08.28





선미야 다 죽여!!!!!


안무 중에 총 탕탕 쏘는 모션 있는데 진짜 내가 요 근래 아이돌판에서 본 중에 제일 멋있고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진다. 예쁘게 웃다가 싹 표정 바꾸고 정색하면서 총 쏘는데 진짜 무릎 꿇게 됨. 제목이 가시나라고 해서 처음엔 으, 하고 싫어했는데 제가 이렇게 보는 눈이 없습니다, 킹갓제너럴 이선미님 사는 동안 많이 버세요


17.08.14



교육부의 새 정책, 정확히 말하자면 문재인의 정책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됐다.


그가 비정규직 교사들을 정규직 교사로 전환해주겠단다. 지역 특성상 사립학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탓에 사립 중, 고등학교를 다녔던 내 입장에선 이 정책이 누구를 보호하려는지 알 것도 같다. 사립학교에는 수많은 기간제 선생님들이 있다. 학생 수가 줄면서 각 시도 교육청에서 사립학교의 정교사 수에 제한을 두기 때문에 기간제 교사의 수만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학교마다 좀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기간제 교사는 학교의 교직원이 아니므로 월급이 고정된 정교사들과 달리 수업 시수에 따라 수입이 다르다. 계약 기간이 지난 뒤에도 학교에 남아있기 위해선 학교측과 재계약을 해야하는데, 이 때 온갖 부조리가 발생한다. 원칙상 담임을 할 수 없는 기간제 교사가 담임인 학급, 이 나라에 아마 수두룩 할 것이다. 이건 기간제 교사가 겪는 모든 불합리한 것들 중 하나일 뿐이다. 스스로는 고용 안정을 위해 불합리를 견디면서 학생들에게 바른 길을 인도하라고 하는 것은 잘못됐다. 문재인 정부가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방법이 틀렸다.


이 나라에는 임용고시라는 시험이 있다. 이 시험은 각 교과별 전문 지식과 교육학 지식에 기반한 것으로 이 예비교사가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학생들을 상대하고 이들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사람인지 묻는다. 교사로서의 자질을 갖춘 사람과 이를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동등한 지위를 주는 것이 과연 옳은가? 절대 아니다. 차라리 비정규직 교사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면서도 그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구하는 방법일 것이다. 


문재인이 국민에게 약속한 것은 기회의 평등, 공정한 과정, 그리고 정의로운 결과다. 하지만 요즘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자꾸 결과의 평등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20세기에 결과의 평등을 시험했던 한 나라를 알고 있다. 지구 최대의 사회주의 실험실 소련 말이다. 사람들은 미국과 겨룰 만큼 강했던 그 나라가 무너지는 순간을 목격했다. 지금까지 문재인은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지지자들의 말만 듣고 정말 제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있지만, 이제부턴 바뀌어야 한다. 지난 겨울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 중엔 그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나라의 몰락을 원하지 않는다면 문재인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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