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 랩미팅을 앞두고 어떻게든 마음의 안정을 좀 얻고 싶어서 다시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루피시아 차는 늘 냉침을 해서 마시는데, 이사 오면서 텀블러를 하나밖에 챙기지 않았고 컵도 없어서 물 한 모금 마시자고 세월아 네월아 차가 우려지길 기다릴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그동안 피해왔던 급랭을 시도했는데, 이거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특히 냉침을 하면 밍숭맹숭한 맛이 나던 자몽 녹차는 급랭을 했더니 음료수처럼 상큼한 맛이 났다. 토치오토메도 찻잎을 듬뿍 넣고 우렸더니 달콤한 딸기향이 진하게 났다. 지금까지 급랭으로 실패한 건 거봉 녹차뿐인데, 그건 티백 위에 바로 뜨거운 물을 부어서 그런 걸지도. 언제든 우려먹을 수 있게 사쿠람보와 토치오토메를 다시백에 담아 놓았다. 다음달엔 티캐디 스푼도 하나 사야지.





기숙사 내 방

/ 아침 7시의 내 방 풍경. 채광 짱이다. 매일 아침 알람과 함께 눈을 찌르는 햇빛(...) 덕분에 잠에서 깬다





앤티앤스 프레즐

/ 나는 음식 하나에 꽂히면 주구장창 그것만 먹는 편이라, 작년 하반기에는 주구장창 마라만 먹었고, 올해 초에는 허니콤보만 잔뜩 먹었다. 이번 연휴에는 갑자기 앤티앤스 프레즐에 꽂혀서 연휴 3일 중 이틀 내내 앤티앤스 프레즐을 시켜먹었다. 아침은 아몬드 크림치즈 프레즐, 점심은 시나몬 프레즐, 저녁은 벚꽃 크림치즈 프레즐.





샤워 가운

/ 2019년 최고의 소비 2등상은 샤워가운-사실 배쓰로브가 맞는 표현이지만 어쩐 일인지 샤워가운이란 표기가 더 일반적으로 쓰이는 듯- 기숙사 복도에서 샤워가운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처음 봤을 땐 정말 말그대로 문화충격이었으나, 사서 직접 입어보니까 이만한게 없다. 일단 수건 한 장과 샤워가운 조합으로 몸의 물기를 전부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5월 들어 가장 만족스러운 소비였다. (하지만 2019년 최고의 소비 1등상은 아쿠아픽)





무지개

/ 이것을 무지개라고 해도 되는가, 언제나 의문.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찍었고, 이 이유 하나만으로 난데없이 감성 충만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난 감성 같은 거 더는 필요 없고 냉철한 두뇌와 객관적인 이성이 갖고 싶어.





파스쿠찌 피치 얼그레이 빙수

/ 빙수 개시했다. 올해의 첫 빙수는 파스쿠찌 피치 얼그레이 빙수. 투썸에서 나온 흑설탕 빙수를 먼저 먹게 될 줄 알았는데. 4월에 산 봄자켓을 몇 번 입지도 못했는데, 벌써 날이 더워졌다. 이젠 여름인가 싶으면서도 아직 아침과 저녁이 쌀쌀하니 봄이라고 우겨본다.





아이스크림

/ 진득한 우유맛 아이스크림. 매우매우 잘 녹기 때문에 맛을 음미할 여유 같은 것은 없고 빠르게 먹어줘야 한다.




헬로우톡

/  일본인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입했다가 일본 여자들에게 껄떡대는 한남 무리를 보고 수치심을 잔뜩 느꼈다. 내가 저것들과 같은 국적이라니. 도무지 기분이 나지 않아 탈퇴해야겠다 싶었는데, 다행히 메세지 보내주는 몇몇 한류팬들(+과 쟈니스 오타들)하고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게 되었다. 헬로우톡을 사용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일본 친구들은 내 잘못된 표현을 잘 고쳐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문법적으로 잘못된 점이나 표현상 어색한 것은 없나요?' 라고 물어야 틀린 점을 고쳐준다. 내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틀렸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이 언어교환의 (아직까지는) 유일한 단점.




거주 환경에 대한 단상

/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지 벌써 2주가 지났다. 기숙사 1인실은 스무살에 살았던 고시원이나 재수학원 학사 같은 느낌인데, 이런 곳에 살고 있으면 거주 환경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맨 처음 살았던 방은 작은 냉장고와 신발장, 책상과 의자, 옷장, 침대, 그리고 정사각형의 화장실이 아주 좁은 공간에 테트리스라도 한 것처럼 끼워져있었다. 주방은 공용이었고 주인 아주머니가 지어주신 밥과 준비해주신 요리기구로 한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결코 위생적인 공간은 아니었고 나 역시 방을 열심히 치우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곳에선 벌레 한 마리 본 적이 없다. 아주머니가 거둬주셨던 서너마리의 길냥이들 덕분이라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반수를 결심한 뒤 이사를 했다. 내가 다니던 학원은 대치동 한복판이었고,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맞추기라도 하듯 수많은 학사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방은 모든게 넓었다. 침대가 넓어서 친구를 데려와 하룻밤 재워줄 수도 있었고, 남는 공간에서 스쿼트나 플랭크 같은 간단한 운동도 할 수 있었다. 내가 학원에 가면 청소를 담당해주시는 분이 매일같이 방바닥을 쓸고 닦아주시는 청결한 방이었다. 그러나 그 방은 내가 인생 최초로 바퀴벌레를 만난 방이기도 했다. 다행히 수능을 보기 전까지 그 방에서 바퀴벌레를 다시 보는 일은 없었다.


반만 성공해서 반수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지만, 나는 보란듯이 반수에 성공했다. 지금 학교에 입학할 때 기숙사를 썼는데, 학부생은 무조건 다인실이라고 해서 정말 지원하기 싫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기숙사 대기번호 100번 후반대를 받았고, 그 때부터 본격적인 자취생활이 시작되었다. 자취방은 말로만 듣던 신림동 고시촌. 술집과 밥집이 많은 2동이 아니라 고시 학원이 많은 9동의 언덕의 꼭지점 바로 밑에 있었다. 보증금 300에 월세 60인 낡은 빌라는 방이 넓어서 춤을 추든, 운동을 하든 끄떡없었고, 추운 날이면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잘 수도 있었다. 거기서 햇수로 3년을 살았다. 커다란 바퀴벌레를 두 번이나 마주치고, 어느날 집에 돌아와 불을 켰을 때 방 한 가운데서 펄럭이는 나방을 봤어도 그 집을 떠나지 않았던 건 유난히 날 예뻐해주셨던 주인 할머니 할아버지 내외 분 때문이었다. 특히 할머니가 날 예뻐해주셨는데, 집에 돌아가는 길이나 집을 나서는 길에 만나서 인사를 드리면 꼭 나를 분식집이나 카페에 데려가 먹을 걸 사주셨다. 우리 건물 사는 학생이라고. 예의가 바르고 착해서 내가 아주 예뻐한다고 하시면서. 나는 나대로 주인 할머니를 보면서 그 때 당시만 해도 살아계셨던 우리 외할머니를 생각했다. 그 따스함에 기대어,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우울했던 시절을 버텼다. 두 분이 건물을 팔고 이사하시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이사를 결정했다.


낙성대로 이사를 갔다. 지금까지 살아본 집 가운데 시설이 가장 좋았고 청소를 게을리 함에도 불구하고 벌레 한 번 본 적 없는 집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늘 그 집을 떠나고 싶었다. 스물 넷, 스물 다섯, 그 즈음에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것들, 예를 들면 취향이나 성격 같은 것들이 시시각각 변했다. 어떤 것들은 빠지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더해지기도 하고, 아무것도 빠지지 않은 채 더해지는 과정만 있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방이 하나 더 필요하다고 매순간 느꼈다. 요리 하고, 밥 먹고, 빨래 하는 공간과 내가 나일 수 있는 공간을 분리하고 싶었다. 서재가 필요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여유가 생길 때마다 투룸을 알아보러 다녔고, 기형적으로 급상승하는 관악구의 집값 때문에 매번 포기했다. 그런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가 포기하기가 지쳐 이사하겠다는 생각 자체를 완전히 버렸을 때쯤, 기숙사에 들어올 수 있었다.


다시 기숙사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객관적으로 봤을 때 기숙사 1인실은 결코 넓지 않다. 책상과 침대, 옷장과 냉장고가 가득찬 방은, 사람 세 명이 서면 꽉 찰 정도의 크기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까지 이 방을 좁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 방은 세탁기가 없다. 세탁실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건조기가 있기 때문에 빨래 건조대를 세울 필요도 없다. 취사실이 따로 있어서 뭔가 먹고 싶다면 거길 이용하면 되고, 운동이 하고 싶으면 체력단련실에 가면 된다. 화장실과 샤워실도 공용이다. 그러니까 이 방에서 해야 할 일은 철저히 자고 쉬고 공부하는 것뿐이다.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나는 그동안 너무 좁은 공간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하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사실 노력만으로 온전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모든 활동에는 그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이 필요하다. 대학가에 기형적으로 분포한 원룸 빌라는 남들 하는 것처럼 저녁마다 밥 해먹고 일주일에 한 번씩 빨래하고 청소하기에 턱없이 좁다. 거기에서 어떻게 아등바등 남들 하는 것만큼 살아왔는지, 지금 생각해보니 놀랍기만 하다.



랩미팅과 염증 재발

/ 랩미팅이 2주째 밀렸다. 처음 미팅이 취소 됐을 땐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한 번 더 밀리니까 이젠 걱정이 된다. 준비가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피피티를 다 만들고 연습까지 한 번 끝낸 이 시점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말디 데이터...분명히 공격받을 것을 알지만 이걸 뺄 수가 없다. 동기들은 원래 말디 데이터라는게 정확하지 않으니 이정도만 제시해도 괜찮다, 혹은 이것만 보충하면 될 것 같다, 고 말하지만 일단 측정한 내가 자신이 없으니 자꾸 흔들리고 만다. 웃긴 것은 이 고민을 1월의 후쿠오카에서도 했다는 것이다. 어제 오랜만에 들춰본 후쿠오카 여행 노트에서, 이치란 라면을 먹으면서도 말디 데이터를 고민했다는 이야기를 읽고 머리를 짚었다 (...) 


랩미팅을 앞두고 평균 취침 시간이 새벽 5시를 훌쩍 넘기면서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고, 이와중에 이너를 셀프 교체하겠다고 나대다가 염증이 생겼다. 3일 정도 항생제와 소염제를 먹었고, 살튀가 생기진 않았나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또 피어싱샵에 갔다. 물론 이번에도 귀 상태가 매우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는 또 머쓱해지고 말았지만. 너무 주접왕인가 싶어 부끄러웠는데, 귀 관리 안 하고 문제 생긴 뒤에 오는 것보단 이게 낫다고 해주셔서 좀 덜 창피해졌다. 무튼 지금 피어싱 조합은 여름에 어울리는 실버 딥블루.






/ 사진 고화질로 바꿔주는 위챗 어플 덕분에 쟈니즈 오타들 삶의 질이 한 1632% 정도는 상승한 것 같다. 






/ (내) 탐라를 뒤흔들었던 후지가야의 경영대 포카리남 사진. 후지가야 진짜 얼굴 최고다. 어쩜 저렇게 생겼지ㅠㅠ...




신경숙

/ 처음으로 사귄 애인과 헤어졌을 때의 일이다. 나는 어제까지 보고싶다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사람이 다시는 보지 말자고 하는 것에 익숙해지지 못한채 술집에 앉아 주룩주룩 눈물만 흘렸고, 내 앞에는 고등학교 내내 다녔던 국어학원의 선생님이 앉아계셨다. 선생님이 그 때 나를 위로하기 위해 이 문장을 테이블 위로 꺼내셨다.


누군가를 사랑한다 해도 그가 떠나기를 원하면 손을 놓아주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그것을 받아들여.

돌아오지 않으면

그건 처음부터 너의 것이 아니었다고 잊어버리며 살거라.


그 문장을 듣고 보기 흉하게 얼굴을 구기며 눈물 참는 소리를 냈던,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그 시절의 나는 신경숙을 좋아해 자주 우울해지던 스무살이었다.


표절 논란 이후로 그녀의 글을 읽지 않은 지 오래 됐다. 그러나 어딘가에 홀린 것처럼 그녀의 책을 샀고, 또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내 세계를 만드는 언어의 대부분이 그녀의 세계에서 왔다는 것을, 0과 1 그리고 구조와 기능의 세계에서 헤매는 동안 잊고 살았음을 깨달았다.


표절은 분명 도둑질이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알지만, 동료 문인을 강간하고 성추행하는 사람들이 종이 위에선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낡아빠진 문장으로 생명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위대함을 노래하고 있는 세상에서 고작 문장 몇 개를 훔쳤다는 이유로 그녀가 그려낸 연약하고 아름다운 세계가 모두 거짓으로 매도되는 것이 슬프다.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때론 삶이 부조리극 같다.




감사합니다

/ 2008년이었나. 아라시가 한국에서 공연을 했다. 그 내한 콘서트에서 에비키스가 백을 선 모양이다. 웹을 돌아다니다가 당시 내한콘 녹음 파일을 우연히 찾았는데, 주니어를 소개하는 코너에서 가야랑 미츠가 안녕하세요, 후지가야 타이스케입니다. 키타야마 히로미츠입니다, 하고 한국어로 자기 소개를 하고 있었다. 다른 파일에서는 Kis-My-Me-Mine 무대를 끝내고 감사합니다! 라고 힘껏 외쳤다. 아주 앳된 목소리였다. 이 때 미츠는 스물 셋이었나. 스물 넷이었나.


종종 쥬니어 시절의 미츠를 본다. 분명 괴롭고 힘든 시기였을텐데 이상하게 반짝이던 미츠를 본다. 아무리 애써도 지금의 나에겐 과거일 수 밖에 없는 그 시절의 미츠를, 나는 모르고 지나온 게 너무 아쉬워서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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