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니 쉽게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일본 드라마에는 삶을 따스하고 살 만한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보통 일드를 보고 나면 '일본 느낌이 난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 때 느낀 '일본 느낌'이라는 건 아마 삶을 보는 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닐까.



중판출래(重版出来)는 시청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드라마다. 총 10회 남짓에 걸친 이야기는 대부분 해피엔딩이다. 설령 누군가 불행해지더라도 그 불행은 오래가지 않고 결국에는 행복해진다. 주인공인 쿠로사와(통칭 '코구마')를 비롯해 바이브스 편집부원들, 그리고 그녀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은 다정하고 따스하다. 하지만 마감에 쫓기고 콘티를 수정하고 때로는 라이벌 회사의 견제를 받는 등, 출판사 직원의 일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재현한 편임에도 이 드라마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드라마가 그리는 '일상'이 실제 일상 사이의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엔 착하고 따스한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불행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중판출래에는 일드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인 '일상의 비일상성(혹은 불가능성)'이 가장 잘 나타난다. 일상의 비일상성이 예의 그 삶에 대한 애정과 만나자, 마법사나 신비한 동물이 없어도 충분히 마법 같은 세상이 펼쳐졌다.



▲중판출래 대망의 마지막회




▲히키코모리로 살던 신인 만화가 나카타 하쿠가 미쿠라야마 선생님의 조언으로 자신 외의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장면 



▲나카타 하쿠의 '피브 전이' 1권 출판을 위해 바이브스 편집부가 힘을 모은다. '신인 죽이는 야스이'가 이번만큼은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나카타를 생각하는 코구마와 자기만 알던 나카타의 싸움은 나카타가 쿠로사와의 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해결된다.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 나온 마츠시게 유타카가 바이브스 편집부장 와다로 나온다. 영업부 부장 오카와의 티격태격 케미가 좋았다.



▲현대 예술 문화상 대상에 미쿠라야마 선생님의 '드래곤 급류'가 선정됐다. 극 말미에 소소한 반전이 됐다.



이오키베 부편집장이 미쿠라야마 류에게 대상 수상 소식을 전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울면서 '세상에 미쳤나봐'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 순간의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냥 감동적이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할 수 있는 말이 감동적이었다는 말 뿐이다.



▲그가 지난 40년간 그린 자신의 만화 단행본들을 바라보는 모습. 은은한 미소가 인상적이다.




▲만화가는 그림만 잘 그리면 돼, 라고 생각했던 나카타는 쿠로사와의 꿈 '중판출래'를 위해 싸인회 자리에 나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자신을 응원하는 수많은 팬들을 만난다. 처음에 그는 싸인은 할 수 있지만 그림을 잘 못 그리니 절대 그림은 그리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자신의 만화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보고 '싸인회 시작 전까지 그림 연습을 하겠다'고 하는 걸 보면 만화는 절대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작품을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 같다.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중판출래의 세계에서 중요하지 않은 삶은 없다. 꿈을 이루지 못해 좌절하다가도 결국 새로운 길을 찾아 반짝이는 삶이 있다. 오랜 시간 한 길을 걸어온 거장의 삶도, 자신만의 방에 갇혀 있다가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히키코모리의 삶도 있다. 주인공은 분명 국가대표 유도 상비군에서 편집부 신입사원이 된 '코구마'지만, 일반적인 드라마에서 조연의 삶이 주연의 삶보다 덜 중요한 것처럼 소비되는 것과 달리 조연들의 삶도 아주 중요하게 다뤄진다. 덕분에 이 드라마에선 모두의 성장 스토리를 볼 수 있다. 이 곳에서 안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40년째 한 길만 판 거장도, 3년 째 원하던 편집부에 못 가고 영업부를 돌아다니는 유령직원도 그리고 이제 막 어두운 과거를 털어내는 병아리 작가와 신입사원까지 예외는 없다. 성장한다는 것은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고통스러운 일이다. 만화가가 설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서도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외치는 거장의 모습이 아름다운 이유는 기꺼이 그 고통을 감수하기로 마음 먹는 데에 있다.



▲현대 예술 문화상의 뒷풀이 장소.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피브전이의 중쇄 출판이 결정된 순간. 동시에 쿠로사와의 꿈이 이뤄진 순간이다.




▲편집부 사람들도, 영업부의 (구) 유령직원 코이즈미도 한마음으로 쿠로사와의 목표 달성을 축하한다.




▲언젠가 쿠로사와가 개발했던 '중판출래' 춤을 편집부 사람들이 사이좋게 따라추는 모습



"누군가를 위한 일, 자신을 위한 일, 그 무엇이라도 좋다.

누군가 움직이면 세상은 달라진다. 그 한 걸음이 누군가를 변화시킨다.

매일은 계속되고 우리는 또 오늘을 살아간다."



악역이나 자극적인 설정 없이도 재미있었던 최고의 힐링드라마 중판출래는 이 나레이션으로 끝을 맺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의 세계를 두근대는 마음으로 지켜 본 사람으로서, 그들이 사는 세상이 언제나 따스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회차와 내가 지은 부제 : 2화(흔들리는 20대), 7화(애매한 재능에 대하여)

+사카구치 켄타로가 주인공은 아니지만 실상 이 드라마의 주연 조연 차이가 미미하기 때문에 비중있게 나온다. 여러 의미로 히로인 실격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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