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3학년 겨울 학기에 이탈리아어를 배웠다. 교생실습을 가려면 일정 학점 이상 이수를 해야 하는데 그 당시 내 학점 수가 3학점 모자라서였다. 학기가 이미 절반 정도 지난 뒤에야 3학점이 아니라 6학점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도 어찌어찌 교생은 잘 갔다)



생각해보니 난 그 때도 연구실에서 인턴을 하고 있었다. 계절 중간고사가 끝났을 때쯤 연구실을 그만뒀다. 짐을 빼면서 자꾸 울적한 기분이 들어 쉽게 걸음을 옮기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내 송별회 겸 연구실 신년 회식 자리와 그 날 밤 집 앞 골목에서의 일도 여전히 선명하다. 어떤 순간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감정의 결 하나 쉽게 상하지 않는다.



이사 간 뒤로 늘 바빠서 동네 산책은 못했다. 그래도 집으로 가는 언덕길에 카페가 하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모힝'으로 가는 지름길이지만. 모힝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파스타 집이다.관심이 없어 늘 지나쳤는데 알고보니 꽤 유명한 카페였다. 유명한 바리스타가 운영을 하고 아인슈패너처럼 학교 근처에서 보기 어려운 커피도 판다고 하더라. 친구가 거기서 파는 플랫그린이 맛있다고 해서 같이 갔다가 자리가 없어서 그냥 나왔던 게 자꾸 생각나 밤중에 카페를 찾아갔다. 카페 이름은 아모르 미오(Amor Mio), 이탈리아어로 내 사랑 혹은 내 연인이라는 뜻이다. (이탈리아어를 배울 때 사랑은 amore였던 것 같아서 검색해보니, amor는 시 등의 문학작품에 주로 나오는 표현이고, 일상생활에서는 amore mio를 훨씬 많이 쓴다고 한다.) '말차코히'라는 이름의 플랫그린을 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아모르 미오의 전광판. (노출을 낮춰서 찍은 사진으로, 실제 실내는 이렇게 어둡지 않다.)



소문대로 인테리어가 깔끔했다. 쿠키나 브라우니 등을 직접 굽는 건지 아모르 미오에는 달큰한 공기가 끊임없이 흘렀다. 

 



▲ 아모르 미오 말차코히 (\5,700)



▲아모르 미오 말차코히 (\5,700)



말차층 위에 에스프레소 샷을 올리고 그 위에는 녹차가루를 입힌 마시멜로를 올렸다. 어차피 아이스 커피라 마시멜로가 음료에 녹지는 않을 것 같아서 커피와 따로 먹었다. 누구는 말차코히가 생각보다 너무 써서 먹기 힘들었다고 한 걸 봤는데, 단 걸 자주 먹지 않아 단 맛에 민감해졌는지 내 입엔 음료가 좀 달았다.




아모르 미오는 인증샷을 찍고 셀카를 찍기엔 좋은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 편히 오래 앉아있을 곳은 아니었다. 의자도 불편하고 책을 읽기에 좋은 조명이 아닌 것도 있지만, 카페 내 금지사항이 너무 많다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다. 노트북 이용시간은 평일엔 1인당 2시간 이내고 그나마도 주말에는 전면금지다. 프랜차이즈 카페가 아닌 개인 카페이니만큼 '영화 감상은 언제나 금지'라고 써져있는 건 이해가 되지만, 그 옆에 '뜨개질은 언제나 금지'라고 써놓으니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 것조차 눈치가 보였다. 뜨개질이나 독서나 손에 든 걸 다 끝낼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을 거라는 점에선 다를 게 없지 않나. 결국 쫓기듯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개인적으로 카페는 일상에 쫓기는 사람들이 찾는 안식처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모르 미오는 안식처라고 보기 어려웠다. 용건 없으면 커피 빨리 마시고 얼른 일어나라고 등 떠미는 것 같은 경험이 너무 불쾌하기도 하고, 이 불쾌감을 감수할 만큼 커피가 맛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아마 다시 찾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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