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부터 9월 24일까지 읽었다.

 

생일선물로 받은 책이다. <계속해보겠습니다> 이후 쭉 황정은 작가를 좋아했기 때문에 이참에 그녀가 쓴 모든 글들을 읽어보겠다는 마음으로 직접 고른 것이었다. 결론만 놓고 말하자면 실망했다.

 

이야기는 너무 맥없이 끝난다. 제목 뿐 아니라 소설 전체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그림자를 비중있게 다루지도 않고, 홍보에서 말한 것처럼 사랑을 말하지도 않는다. 문제집의 첫 단원에 온 힘을 쏟는 어떤 학생들처럼, 작가가 하려는 이야기도 처음엔 매우 의욕적이지만 이내 곧 흐지부지되고 만다.

 

이 불친절하고 게으른 소설을 변호하기 위해 평론가가 긴 글을 썼지만, 글쎄. '매우 뛰어난 소설이지만 혹시라도 있을 오독을 막기 위해 평론을 쓴다' 라는 말에 오히려 이 작품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작품은 작가의 방식으로 재현된 세계이다. 작가가 세계를 재현하는 방식에는 작품의 의도 같은 것들이 들어가기 마련인지라, 독자는 작품을 읽는 것 만으로도 작가의 의견을 접하고, 이에 대해 반대하거나 찬성하며 재현된 세계에 쉽게 동화된다. 그러나 텍스트가 이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평론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과연 이 소설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부족한 글을 급하게 변호하려다보니 평론도 어딘가 엉성한 면이 있다. 특히 작품 속 그림자를 '환상'의 모티프로 삼은 점이 그렇다. 환상이란 독자가 작품 속의 초자연적인 사건을 마주했을 때 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면서 생기는 망설임에 기인한다. 하지만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그림자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있으므로 독자 역시 등장인물의 세계에 동화되어 그림자의 존재를 망설임 없이 수용하게 된다. 이것은 환상이 아니다. 일어서는 그림자 역시 환상의 모티프가 될 수 없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실망스러운 작품이다. 책을 덮으면서 시간과 돈이, 그리고 내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여러모로 신경을 써줬던 그 마음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등단 이후 그녀의 첫 장편소설임을 생각하면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계속해보겠습니다>를 통해 작가 황정은을 좋아하게 된 나로서는 두 작품 간의 불연속적인 수준 차이가 작가의 역량이 성장한데서 왔다고 아직 믿고 있다. 부디 이 믿음이 깨지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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